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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검객

2008-07-15 11:14:24, Hit : 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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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뽑은 야구만화 베스트 10

만화와 야구,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만화는 직업 탓에 늘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야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난 축구는 A매치만 봐, 진짜 스포츠는 야구지, 라고 말하곤 하지만 10년 넘게 야구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야구는 제 운명과 함께였나 봅니다. 새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가 우리 동네 목동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제 인생에 한 부분을 야구가 다시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역 편집자 시절, 만화 중의 만화는 야구만화다, 라고 외치며 여러 만화가들과 야구만화를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결과물이 나온 것은 한 작품뿐이었습니다. 그마저 흥행에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지요. 아직도 그 작품 <파워 베이스볼>에 많은 아쉬움과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또래인 만화가와 꽤 친하게 지냈는데, 그 작품 이후로는 별로 만나질 못했네요.(동재씨, 잘 지내지요?)

어쨌든 만화 중의 만화는 야구만화입니다. 그럼 제가 멋대로 뽑은 야구만화 베스트10을 발표해 봅니다. 아직 안 보신 만화가 한 작품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진짜 만화광이 아니거나, 진짜 야구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1위 - H2
아다치 미츠루, 소장판 1-17권(완결)
접근방법->서점 판매중

청춘야구만화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아다치 미츠루의 대표작입니다. 남자 주인공 히로와 히데오, 여자 주인공 히카리와 하루카의 사랑과 야구 열정이 잘 담겨져 있는 만화지요.주인공 두 커플의 이니셜을 따서 H2이기도 하고, 두 명의 야구 영웅(hero)이야기라서 H2이기도 합니다.

중학야구 우승을 이끌었던 히로는 부상으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자 야구부가 없는 학교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웬걸 자신의 부상을 진단한 의사가 돌팔이란 걸 알게 되고, 야구동호회에서 초보자들과 다시 야구를 시작합니다. 야구동호회에서 정식 야구부로, 지역 예선을 거쳐, 갑자원 우승까지의 기나긴 투쟁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한명한명 새로 나올 때마다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사건이 전개되는 긴박한 연출감각이 최고인 만화입니다. 일반판 34권으로 완결됐다가, 최근에 두꺼운 소장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2위 - 터치
아다치 미츠루, 소장판 1-11권(완결)
접근방법->서점 판매중

<터치>는 오늘날의 최고 인기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를 있게 한 대표작입니다. 1981년에서 1987년까지 일본의 주간 만화잡지 <소년선데이>에 인기리에 연재됐고, 1987년 일본 최초로 단행본 발행부수 5천만부를 돌파한 대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슬램덩크>가 나오기 전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만화가 바로 <터치>입니다. 애니메이션도 큰 인기를 끌어 역대 시청률 베스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나라 고교야구대회인 '고시엔'을 '갑자원'으로 친숙하게 부르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고의 일본 고교 야구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타츠야, 카즈야 쌍둥이 형제와 그들의 소꿉친구 미나미의 삼각관계(?)와 야구만화의 재미를 절묘하게 배치한 작품으로, 절제된 감정표현과 보이지 않는 복선의 연속, 여백의 미, 암시적 표현 등 아다치 미츠루 특유의 만화코드가 <터치>에서 정립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멋대로 뽑은 야구만화 베스트 10의 1위를 H2로 할지, <터치>로 할지 몹시 고민했습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팬이라면 이런 고민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 프로야구선수들 중에서는 예전에는 <거인의 별>을 보고 야구선수가 될 것을 결심했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터치>를 보고 내 인생을 야구로 정했다, 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습니다.

3위 - 전설의 야구왕
고행석, 1-7권(완결)
접근방법->구해보기 어려움. 굉장히 큰 대여점이나 만화가게, 혹은 올드 만화광의 숨겨진 책꽂이 정도에 있지 않을까? 어떤 온라인 사이트에서 서비스 중이라는 소문도 있음.

90년대 전반기 세계 만화계의 최강자는 <드래곤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드래곤볼>은 해적판과 정식계약판이 모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드래곤볼>이 연재되던 만화잡지 <아이큐점프>는 매주 30만부가 넘게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큐점프>의 최고 인기 만화가 <드래곤볼>이 아니라 <전설의 야구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조금 시들합니다만, 만화잡지에는 애독자 인기투표라는 게 있습니다. 잡지에 포함된 애독자엽서에 재미있게 본 만화를 골라서 적어 보내면 인기 순위를 집계하는 거지요. 다양한 경품을 걸어놓고 진행되기에 많은 독자들이 참여합니다. 매주 30만부가 팔리는 만화잡지이니 애독자엽서의 양이 상당했습니다.

당연히 <드래곤볼>이 1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랜 기간 고행석의 전설의 야구만화, <전설의 야구왕>이 인기순위 1위였습니다. 고행석 선생도 이런 사실에 자부심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셨다는 후문입니다. 반쯤 감긴 눈의 소년 구영탄이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고, 심지어는 외계인과도 야구시합을 벌인다는 조금 황당해 보이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배꼽 잡게 하는 고행석 특유의 개그 코드가 잘 살아있는 만화입니다.

4위 - 공포의 외인구단
이현세, 2002년판 1-12권(완결)
접근방법->대규모 대여점이나 만화가게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최고의 야구 만화입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닭살스런 대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던 80년대 만화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여러 차례 단행본으로 재발행되어 지금도 동네의 큰 대여점이나 만화가게에 가면 볼 수 있는 만화입니다.

각자의 상처를 지닌 주인공들이 지옥훈련을 통해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로 거듭난다는, 지금 보면 조금 상투적일지 몰라도, 그 당시에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만화입니다. 프로야구가 막 시작되고, 인기를 키워가던 시기라서 더욱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적이 부진한 팀은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지옥훈련을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했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다니는 만화출판사 편집기자들을 상대로 비공식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화 편집자인 당신이 꼽는 최고의 만화는 뭐냐, 라는 질문에 <슬램덩크>를 제치고 <공포의 외인구단>이 1위를 차지했었습니다. 재미삼아 한 설문조사이기는 했으나 당시의 30대 편집자들이 청소년기에 본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원히 잊지 못할 야구만화로 기억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야구장의 주력부대인 3,40대 아저씨들은 대부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5위 - 그래 하자
하라 히데노리, 1-19권(완결)
접근방법->꽤 큰 대어점이나 만화가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인 <그래, 하자>를 5위로 꼽습니다. 야구, 축구, 심지어 조정까지 다양한 스포츠만화를 그려온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권수가 긴 만화입니다.
만화를 고를 때 실패하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가 권수가 긴 만화를 고르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만화는 독자의 인기에 따라 그 생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래곤볼>같은 초특급 대작은 작가가 작품을 끝내고 싶어도 독자들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연재를 종료하지 못하고, 권수가 길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 하자>는 단지 권수가 긴 만화가 아니라 아주 세밀한 드라마가 담겨 있는 만화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고교 야구 감독과 젊은 선수들의 인생을 치밀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스포츠 만화지만 격렬한 투지보다는 사실적인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만화입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 고교야구 대회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야구를 모르거나 스포츠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6위 - 원 아웃
타이타니 시노부, 1-19권(완결)
접근방법-> 서점 판매중

인생은 승부이고, 야구도 결국 도박일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만화 <원 아웃>을 6위로 꼽습니다. 동네 야구 도박꾼인 토구치 토아를 프로야구에 끌어들여 다 망해가는 구단을 우승시킨다는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극도로 리얼한 야구만화입니다.

원아웃을 잡으면 5백만엔 받고, 1실점하면 대신 5천만엔을 내놓는 황당한 계약을 한 토구치 토아의 페이스에 말려 결국 구단과 구단주는 파산으로 치달아가고, 토아는 야구단을 인수해버립니다. 최고 구속이 120km/h도 안 되지만, 치밀한 두뇌 플레이로 상대를 잡아버리는, 야구선수라기보다는 야구도박사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법한 주인공의 대활약이 그려집니다. 결코 야구만화의 주인공일 수 없어 보이는 캐릭터이지만 그의 진지한 승부에 대한 집중이 선수들을 변화시키고 결국 큰 성과를 거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야구를 무시하는 것 같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과 치열한 연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작입니다.

7위 - 메이저
미츠다 타쿠야, 1-65권(계속)
접근방법-> 서점 판매중

열혈 소년 야구만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도 야구만화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입니다. 동네야구에서 시작해, 고교야구, 메이저리그, 월드베이스볼클래식까지 이어지는 주인공 고로의 대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행본이 60권이 넘었고, 애니메니션도 몇차례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투구하는 오른팔을 다친 후, 왼손투수로 변신하기도 하는 열혈 야구 소년 고로가 최고의 메이저리거가 되는 날 아마도 마무리가 될 듯합니다.

8위 - 크게 휘두르며
히구치 아사, 1-9권(계속)
접근방법-> 서점 판매중

<크게 휘드르며>는 여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신세대 취향의 야구 만화입니다. 공의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에이스가 되고 싶은 주인공 미하시 렌과 친구들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운드 위에 서 있고 싶은 모든 야구선수의 순수한 꿈을 우유부단한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야구만화입니다.

<오! 나의 여신님> <무한의 주인> <카페 알파> 등 기존의 일본만화와 다른 경향의 작품들을 연달아 소개하면서, 한 때 ‘일본만화의 미래’라고 까지 칭송받던 잡지 <애프터눈>의 첫 번째 야구만화라는 것만으로도 크게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9위 - 신 거인의 별 - 하나가타
무라카미 요시유키, 1-8권(계속)
접근방법-> 서점 판매중

일본 야구만화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거인의 별>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신 거인의 별-하나가타>도 주목해야 할 만화입니다. <거인의 별>을 모르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야구만화의 감동을 전달하겠다는 목표로 리메이크가 추진됐다고 합니다. 원작의 주인공인 호시 휴마의 라이벌이었던 하나가타 미츠루를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열혈, 투혼과 같은 구시대의 메시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깔끔한 그림과 개성 있는 스토리 전개로 젊은 만화팬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10위 - 고 앤 고
코야노 타카오, 1-30권(완결)
접근방법-> 서점 판매중

“누구보다도 빠른 공을 던지고 싶다”
마운드 위에 서는 투수라면 누구나 가진 소망입니다. <고 앤 고>는 고교야구선수로는 어울리지 않는 금발머리의 외모를 지닌 주인공 닛타 에이고가 단지 소망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기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 만화입니다. 빠른 공을 던지고 싶은 욕망에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단순무식 주인공이 나오지만, 존경하는 선배와 팀을 위한 협동과 단결의 소소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단순한 것은 무식해보이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이 만화를 내 맘대로 야구만화 베스트의 10위로 꼽으며 긴 글 마칩니다.

후기)네이버 블로그에 먼저 포스트했던 글입니다. 글 올린 날 어찌 된 영문인지 하루 방문자가 10여명 내외이던 블로그에 5만명이 넘는 사람이 접속하고, 댓글이 2백여개가 달렸습니다. 확인해보니 '야구 만화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 10'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 메인에 걸렸더군요.
네이버 메인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도 신기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을 찾아내어 대문에다 거는 거대기업의 힘이 더 무서워지더군요.
제가 쓴 글의 제목은 '내 맘대로 뽑은'이었는데 네이버 메인에는 '놓쳐서는 안 될'로 바뀌어서 댓글에 왕종훈이 없으니 무효다, 독고탁도 모르는 걸 보니 어린애가 쓴 글인 것 같다는 악플(?)들도 달려있었습니다.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어 재미있었습니다. 이 만화도 재밌다고 달아놓은 댓글을 통해 잊고 잇었던 만화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제7구단> <질 수 없다> <도룡뇽구단의 말썽꾸러기들> <번데기 야구단> <루키즈> <청공>...
아, 다시 보고 싶습니다.

2008.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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