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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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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검객 2003-02-03 16:36:02, Hit : 22126
Subject   만화가와 만화기자,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1999년 12월)

행복한 만화잡지
만화왕국 일본에는 행복한 만화잡지가 하나 있다.
일본의 만화잡지는 소년지와 성인지, 그리고 청년지로 나뉜다. 청년지는 소년지와 성인지의 중간세대 즉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이다. 청년지 중에 '영(YOUNG)'으로 시작하는 계열의 잡지들, 즉 [영점프][영매거진] 등은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청년지는 대부분 인기정상의 연예인을 표지모델로 쓰고, 권두에 늘씬한 미녀들의 수용복 차림 화보사진을 게재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녀 사진 같은 '양념'은 눈 씻고 찾아도 없는 잡지가 있다. 표지에는 파인애플이나 오렌지를 의인화한 코믹한 일러스트가 실리고, 전임 수상의 정치칼럼이 실리기도 하는 만화잡지가 [빅 코믹 스피리츠]다. [빅 코믹 스피리츠]가 양념에 신경을 덜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는 만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야와라> <해피>, 요리만화의 원조 <맛의 달인>, 하라 히데노리의 <그래 하자> <청공>을 비롯해 타카하시 신의 <좋은 사람>, 노조 준이치의 <월하의 기사>, 에가와 타츠야의 <동경대학스토리> 등의 대히트작이 쉼 없이 연재되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강력한 재미로 무장한 만화가 별다른 양념을 필요하지 않게 만든 셈이다.
만화잡지를 만드는 만화가와 기자들 모두 재미있는 만화, 행복한 만화잡지를 꿈꾼다.


만화기자가 뭐지?

만화잡지는 만화가의 원고를 기자가 편집해서 만든다. 하지만 독자들은 만화가에 대해선 잘 알아도 만화잡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필자도 만화잡지 기자란 직업을 가진 뒤 궁금해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번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곤 했다. 다음에 만나선 '너 만화 그린다구 했었지'라는 소릴 자주 듣긴 하지만….
그러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만화 곳곳에 숨어있는 '기자'를 만나기도 한다. 책머리에 'OO기자님께 감사한다'란 말을 붙이는 만화가들도 종종 있고, 담당기자와의 마감 실랑이를 비꼬아 원고 여백에 몽둥이를 들고 감시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 넣는 작가들도 있다. 필자도 몇몇 만화에서 철퇴를 들고 작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고, 어떤 만화에선 황건적의 손에 한방에 날아가기도 했다. 그때 그 황건적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태엽인 골로 갔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만화잡지 기자와 만화가가 갈등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만화가와 기자는 좋은 만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중요한 파트너이다.

만화가와 기자, 애증의 파트너쉽
만화잡지 기자는 만화책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다. 작가가 원고를 기한 내에 마감하게 하는 일과 잡지나 단행본을 편집하는 일이 주된 업무. 책을 편집하는 일이야 대충 상상이 되지만 작가의 원고를 마감시키는 일이란 그 끝과 시작을 찾기 힘든 미로와도 같다. 몇몇 사례를 통해 만화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예비 만화가 S씨는 A, B출판사를 전전하다 결국 C출판사에서 단행본을 내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S씨가 거쳐간 A, B출판사 기자들이 몹시 안타까워했음은 당연한 일. 만화잡지 기자는 출판사를 찾아온 수많은 예비 만화가의 만화 중에서 재미있는 만화를 골라내는 일은 한다. 여기서 만화잡지 기자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예비 만화가가 출판사를 처음 찾아와서 연재를 시작하기까지는 대략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스토리 라인 설정, 캐릭터 디자인, 콘티 작성, 데생, 펜터치와 마무리 등의 단계를 거쳐 연재가 되기까지 만화가는 아무런 수입도 없다. 원고를 출판사에 마감시켜야 비로소 원고료를 받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신인만화가는 데뷔 초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은 히트작을 연이어 발표해서 고수입을 올리는 Y씨의 데뷔 당시, 원고마감을 독촉하러 간 필자가 반지하 단칸 작업실의 문을 열면 바닥엔 온통 스크린톤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앉아서 기다릴만한 곳은 문에서 조금 떨어진 침대뿐이었다. 필자는 문을 열자마자 멀리뛰기 선수가 된 것처럼 침대로 점프를 한 뒤 원고를 기다리곤 했다. 지금 Y씨는 생활하는 집과 번듯한 화실을 따로 갖고 있다.

으아아악! 빵꾸는 안돼~
연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이젠 원고 빵구(펑크)라는 악령이 따라 붙는다. 원고를 펑크내는 작가들의 이유와 유형도 갖가지. 만화잡지에는 20대의 젊은 만화가들이 많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연애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90년대 초반 데뷔작부터 큰 인기를 끈 L씨는 연이은 두 번의 실연으로 만화를 포기하고 도망칠 것을 결심했다. 마침 슬럼프 징조를 눈치챈 L씨의 담당기자가 부산으로 떠나는 작가를 중간에서 찾아내긴 했지만 결국 펑크가 나고 말았다.
연애문제를 잘 해결해 플러스가 된 작가들도 있다. 꽤 많은 수의 만화가들이 작업실 동료, 혹은 문하생 등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마감이 급박해지면 빼어난 실력으로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보수를 지불할 필요도 없으니 1석2조인 셈이다.
여러 잡지에 겹치기 연재를 하는 경우가 많은 순정만화가들의 경우 완전 펑크는 아니더라도 계획된 연재분량을 갑자기 줄이는 경우가 잦다. 인쇄 마감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담당기자로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사전에 '보판'이라 불리는 짧은 분량의 원고들을 미리 만들어 놓기도 한다. 주로 신인들의 단편이 보판으로 많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연재기회를 얻어 작품을 발표하면서 역량을 키워 인기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만화기자에 도전하자
우리 나라 만화잡지에는 보통 3-5명의 기자가 일하고 있다. 기자 한 사람이 평균 4~5명의 연재 작가를 담당하면서 작품 진행 방향과 마감에 대해 협의한다. 물론 연재를 준비하는 예비 만화가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우리보다 만화잡지의 역사가 오래되고 시스템이 확립된 일본의 경우 기자 당 연재작가의 수가 1,2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만화가 한 명에게 더 많은 정성을 쏟을 수가 있다. 특수한 경우 만화가 한 명에 3,4명의 기자가 배정되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하라 히데노리의 <언제나 꿈을>에 나오는 것처럼 매회 콘티단계에서 원고의 진행방향을 사전 협의를 할 수 있는 저력이 나온다.
[빅코믹 스피리츠]처럼 행복한 만화잡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만화가도 많이 필요하지만, 능력 있는 만화 기자도 많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일고 계신 당신이 취업을 준비하는 만화 애호가라면 만화기자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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